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이 겪고 있는 혁신의 고통과 반격 전략을 살펴봅니다.
도요타, 닛산, 혼다는 과거 브랜드 신뢰성과 하이브리드 기술로 2008년과 2020년 두 차례 시장 최고점을 기록했으나, 급변하는 중국 전기차 시장(NEV)에 안일하게 대응하며 판매가 급감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들은 자율주행 기능과 가격 경쟁력을 핵심으로 한 반격 전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상해 모터쇼에서는 일본 제조사들이 중국 로컬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위기와 반격 카드
일본 제조사들은 오랫동안 품질과 신뢰성으로 중국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해왔지만, 전기차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도요타와 닛산은 자율주행 레벨 2+의 NOA(Navigation on Autopilot) 성능과 가격경쟁력으로 중국 로컬 브랜드에 맞서기 위한 전략을 마련했습니다. 일례로 닛산은 2021년 아리아 출시 이후 주목할 만한 전기차가 없었으나, 이번 모터쇼에서 BYD의 씬 L이나 샤오펑의 M03과 경쟁할 수 있는 119,800위안(약 2,370만원) 가격의 N7 중형 세단을 공개했습니다.
일본 업체들의 반격은 폭스바겐과 유사하게 중국 로컬 기술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독자 기술에 의존하던 일본 자동차 업계의 큰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합니다.
도요타, 닛산, 혼다의 서로 다른 중국 진출 전략
도요타와 닛산은 초기에 글로벌 전기차 모델인 bZ4X와 아리아를 배터리만 변경하여 중국 현지 생산하는 소극적 전략을 취했습니다. 반면 혼다는 중국 시장 전용 전기차 개발 컨셉으로 2022년 e:NS1과 e:NP1 시리즈를 출시하며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전략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 회사 모두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개발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당시 대규모 봉쇄로 경영진과 본사 스태프들의 현지 출장이 제한되면서, 그들은 중국 시장의 급속한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내연기관차에서의 성공 경험에 의존한 개발 방식을 고수하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모델들은 대부분 실패로 귀결되었습니다.
중국 시장 대응 실패와 과감한 전략 수정
도요타는 bZ4X의 저조한 판매로 2024년 판매를 중단했으며, 이후 더 현지화된 접근법으로 중국 전용 모델인 bZ3를 2023년에 출시했습니다. 특히 BYD와의 합작 회사를 통해 도요타는 디자인과 안전성 부분을, BYD는 배터리와 구동계를 담당하는 협업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bZ3의 2023년 판매량은 5만대로, BYD의 한(漢)이나 씬 플러스(秦Plus)의 판매량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2022년 북경 모터쇼와 2023년 상해 모터쇼에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보여준 기술 혁신과 개발 속도, 가격 경쟁력은 일본 자동차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본 업체들의 신속한 2단계 전략 전환
일본 업체들은 충격에서 벗어나 빠르게 2단계 전략을 추진했지만, 도요타와 혼다의 현지 개발 체제 및 부품 조달 방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도요타는 2024년 3월 bZ3X를 출시했으며, 6월에는 bZ5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이번 모터쇼에서는 플래그십 모델이 될 bZ7 컨셉카를 공개했습니다.
혼다는 2024년 5월에 e:NS2를 출시했고, 2024년 3월에는 새로운 서브 브랜드와 함께 예(Ye) 시리즈의 S7과 P7을 출시했습니다. 이번 모터쇼에서는 예 시리즈의 두 번째 모델인 GT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혼다의 e:NS2와 동풍혼다의 e:NP2를 합쳐도 월간 판매량은 333대에 불과해 심각한 실패를 겪고 있습니다.
혼다의 브랜드 전략 실패와 교훈
혼다는 중국 업체들이 다양한 서브 브랜드로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모방해 '빛나다', '찬란하다'의 의미를 담은 '예(Ye)' 브랜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브랜드명은 출시 전부터 문제가 되었습니다. 중국어에서 긍정적 의미를 가지지만, 일부 네티즌들이 '화장하다'라는 의미의 '화(化)'와 발음이 유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기차 화재 위험성과 연관지어 부정적으로 해석되거나 조롱받아, 결국 혼다는 출시 직전에 이 서브브랜드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또한 혼다의 전기차 플랫폼인 '아키텍처 W'는 기존 내연기관 차량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기존 모델과의 차별성 부족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혼다의 반복된 실패와 원인 분석
혼다는 도요타의 bZ4X 실패 사례를 두 차례나 반복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e:NS2의 실패도 그렇지만, 4년 전부터 개발해온 P7이나 최근 발표된 GT 개발이 내연기관차의 성공 경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점이 문제였습니다.
혼다의 경영진과 엔지니어들은 중국 시장 변화를 알고 있었음에도, 기존 내연기관 플랫폼으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중국 업체들과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기술 격차가 있었음에도, '혼다 센싱' 기술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으며, 비용이 많이 드는 엔드투엔드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과소평가했습니다. 사실상 그러한 첨단 기술을 개발할 역량도 부족했습니다.
기술적 편향과 시장 이해 부족
엔지니어 중심 사고가 강해 "LFP 배터리는 항속거리가 짧아서 안 된다", "삼원계 배터리를 써야 한다"는 등 기본 성능 위주의 사고방식에 매몰되었습니다. 혼다는 중국 로컬 업체들을 이길 실제적인 전략이 부재했고, 실행력도 매우 약했습니다.
S7과 P7의 출시 첫 달인 2024년 3월 판매량은 고작 394대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실패로 혼다의 중국 판매량은 2019년 150만 대에서 2023년 85만 대로 43% 감소했습니다.
혼다의 전략 180도 전환과 중국 기술 수용
혼다는 오랫동안 고수해온 독자 개발 방식(자전주의)이 중국 시장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이번 모터쇼에서 과감히 중국 로컬 업체 기술에 의존하는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율주행 기술은 모멘타(Momenta)와 공동 개발하고, LFP 배터리 채택을 결정했으며, 딥시크(DeepSeek)와 같은 AI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4년의 시간을 허비한 결과, 이러한 전략 변경에도 당분간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도요타의 현지화 전략 성공 가능성
반면 도요타의 bZ3X는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요타는 BYD와의 기술 협력 범위를 확대했고, 개발 속도를 중시하며 현지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개발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특히 기존의 품질과 신뢰성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비용 절감을 함께 추구하는 전략으로 중국 로컬 기업의 스마트 기술을 적극적으로 융합했습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는 화웨이의 HarmonyOS를 과감하게 적용했으며, 실내는 14.6인치 대형 스크린으로 테슬라와 유사한 미니멀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경쟁사들이 최신형 퀄컴 스냅드래곤 8295를 사용하는 데 반해, 도요타는 이전 세대 퀄컴 스냅드래곤 8155칩을 적용해 비용 절감과 적정 성능을 균형 있게 추구했습니다.
기존 업체 최초의 첨단 자율주행 기술 도입
도요타는 레거시 자동차 제조사 중 최초로 일부 상위 트림에 중국 모멘타의 엔드투엔드 기술이 적용된 NoA(Navigation on Autopilot) 기능과 로보센스(RoboSense)의 라이다를 탑재했습니다. 이를 통해 중국 로컬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라이다가 장착된 모델은 254 TOPS의 연산 성능을 갖춘 엔비디아 오린-X 칩을 탑재하는데, 이는 BYD 차량에 적용된 성능과 유사한 수준으로, 철저한 비용 관리 전략의 일환입니다. 다만 다른 중국 업체들이 미래를 대비해 과도한 사양의 하드웨어를 미리 탑재하는 트렌드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도요타의 획기적인 부품 조달 전략 변화
BYD 등 중국 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비용 구조를 실현하기 위해 도요타는 전략적 변화를 단행했습니다. 지금까지 도요타는 품질을 우선시하여 글로벌 부품 업체나 그룹 내 부품사를 활용해 왔으나, 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 로컬 부품 업체로 과감하게 전환했습니다.
더 나아가 도요타는 자사의 e-TNGA 플랫폼 대신 광저우 자동차의 전기차 브랜드 아이온(AION)의 V 모델에 적용 중인 AEP 2.0 플랫폼을 채택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폭스바겐이 샤오펑의 플랫폼을 사용하기 위해 7억 달러를 투자한 것과 달리, 도요타는 플랫폼 사용에 대한 기술료만 지불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철저한 현지화와 비용 절감 전략
이러한 전략적 변화로 bZ3X 부품의 65%를 중국 부품 업체에서 조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일본 등 해외에서 수입하는 부품은 1%로 최소화했습니다. 가격을 109,800위안(약 2,180만원)까지 낮추기 위해 배터리 용량이 작은 트림도 개발하는 등 세부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도요타 그룹은 그동안 도요타, 아이신, 덴소 3사가 설립한 블루 넥서스(Blue Nexus)에서 제작한 전동 액슬을 사용해 왔으나, bZ3X에서는 그룹사가 아닌 니덱(Nidec) 중국으로부터 부품을 조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니덱 중국은 전동 액슬의 반도체를 포함한 부품을 중국산으로 적극 사용하여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도요타의 초기 성과와 낙관적 전망
도요타는 bZ3X 출시 후 6시간 만에 만 대의 주문을 확보했다고 발표했으나, 3월 16일 출시 이후 3월 한 달간 판매량은 2,490대로 여전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누적 판매량이 만 대를 넘어서며 긍정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도요타의 현지화 전략은 폭스바겐이나 혼다와 달리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특히 중국 시장의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 도요타의 접근법은 주목할 만합니다.
렉서스의 과감한 중국 투자와 전략적 의미
이러한 상황에서 렉서스는 ES의 전기차 버전을 공개하고, 100% 단독 투자로 연간 생산능력 10만 대 규모의 상해 공장을 2027년부터 가동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른 업체들이 판매 부진으로 인원 감축이나 공장 축소, 심지어 철수를 고려하는 상황에서 도요타의 이러한 역발상은 매우 놀라운 결정입니다.
이는 도요타의 전략적 의도가 반영된 결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도요타는 일본 본사에서 2026년을 목표로 ADAS를 탑재한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을 개발 중이지만, 그 진행 속도가 느리고 기능적으로도 중국의 SDV 대중화 추세를 따라가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을 통한 글로벌 기술 확보 전략
렉서스는 중국에서 먼저 SDV 대중화에 대응하는 기술을 현지 파트너사와 협력하여 습득하고 내재화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은 중국 소비자들만큼 스마트 차량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고 정부 규제도 강한 편이지만, 2030년 이후에는 SDV의 글로벌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상해 공장에 투입되는 차량을 개발함으로써 렉서스는 중국에서 선도적인 기술을 학습하고 축적하려는 장기적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을 포함한 SDV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기술 협력 전략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폭스바겐은 중국 샤오펑과는 별개로 미국 리비안에 투자했으며, 도요타 역시 최근 미국의 웨이모(Waymo)와 자율주행 분야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글로벌 1, 2위 업체인 도요타와 폭스바겐의 중국 NEV와 SDV 개발 전략은 한국 자동차 업체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전략적 변화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중국 시장과 기술에 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독자 개발에서 협력과 현지화로의 전환이 불가피함을 시사합니다.
결론: 일본 자동차 업계의 교훈과 전망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중국 전기차 시장 대응 사례는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기존의 성공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도요타와 혼다의 상반된 전략과 결과는 중국 시장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현지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도요타의 과감한 현지 기술 수용과 비용 구조 혁신은 레거시 자동차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반면 혼다의 사례는 시장 변화에 대한 빠른 인식과 적응 실패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보여줍니다. 앞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중국의 기술력과 시장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며, 이에 대응하는 전략의 성패가 각 업체의 미래를 좌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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